어제(2011/9/8/목) 전략적HRD세미나 수업에서 현재 센터에서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팀별로 올해 진행한, 진행중인 연구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어떤 주제와 연구문제로 이를 논문으로 쓸 것인지에 대해 계획을 나누고 의견을 주고 받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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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피드백을 하지 않은채 계속 듣기만 하다가 문득 의문이 하나 들었다.
전문가 성장 모형, Best HRD 기업의 성공 모형, index 연구에서의 모형에 이르기까지 모형이란 말을 참 많이 쓰고 있구나. 현재 하고 있는 연구의 상당수가 모형에 기반해서 연구를 하거나 모형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 모형이란 게 뭐지?
다른 글을 찾아보지 않은 채 혼자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모형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추상화된 구조적 틀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이를 포괄모형이라 명명하겠다. 즉 복잡한 현상이나 요인들 중에서 핵심을 추출했거나 세부적인 사항들을 좀 더 포괄적인 요인으로 축약해 낼 때 우리는 이를 모형이라 한다. 둘째, 모형은 따라할 만한 모범, 견본, 좀 더 나아가 이상형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를 이상모형이라 명명하겠다. 모형은 영어로는 model인데, 영어권의 뉘앙스는 정확히 모르지만 적어도 이를 우리말로 그대로 발음한 '모델'은 이 이상모형의 의미에 가깝다. 예컨대 "ㅇㅇㅇ가 내 인생의 모델"이라고 할 때 ㅇㅇㅇ는 확실히 추상화된 구조적 틀이라가보다 모범, 견본, 목표를 의미한다. "신제품 발표회에 전시된 모델"이라고 할 때 모델은 '좋은, 바람직한, 이상적인'의 의미는 생략된 채 견본의 의미로만 사용된다. 그러나 이런 모델 역시 시제품 중 최상의 제품이 선보인다는 점에서 이상모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한편 연구 모형이라는 개념은 포괄모형과 이상모형의 의미를 모두 가진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연구 모형은 연구에 사용되는 데이터와 정보, 연구가설을 축약하여 보여줌과 동시에(포괄모형), 연구 진행 과정을 인도하는 지도 역할을 한다. 연구자는 연구 모형에 근거하여 보고, 듣고, 수집하고, 해석한다(이상모형). 이 때 연구모형은 단순한 추출이나 축약을 넘어 일종의 이상으로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몇 연구에서 모형은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을 설명할 때는 이상모형의 관점을 부각시킨다. 즉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HRD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인적자원개발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모형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이 모형에서 제시하는 요인이나 조건을 갖추거나 실행하면 전문성 개발, 기업HRD, 국가인적자원개발이 '잘 될 수 있다'고 설득한다. 그런데 연구방법 또는 연구결과에서 모형은 포괄모형의 형태로 가시화된다. 인덱스 연구의 경우 수요, 공급 등 4가지 요인과 그 하위 요인, 그리고 요인들간의 관계로 구성된 모형이 제시되고, 전문성 연구에서는 가치, 학습, 창조, 경험 또는 관계 요인 및 하위 요인이 제시되는 식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Best HRD 연구나 인재상 연구에서도 비슷한 형식이 제시될 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 생각에 포괄모형과 이상모형 간에는 큰 간격이 있다. 특히 '성장 모형', '성공 모형'을 논할 때 그러하다. 그 간격은 첫째, 시간과 순서의 문제, 둘째, 일반성과 특수성의 문제에 기인한다.
먼저 시간과 순서의 문제는 특정 개체가 포괄모형으로 제시된 이상모형에 가까워질 때는 반드시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모든 요인에 걸쳐 골고루 한꺼번에 발달하기보다 순서를 따라 하나씩 발달하거나 또는 질적인 변환의 과정을 통해 발달한다는 사실이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인재(조직/국가)의 성장(성공) 모형을 A, B, C, D 라는 네 가지 요인을 바탕으로 구성하였다고 할 때 이 성장모형을 통해 연구자가 의도하는 함의는 대략 다음과 같다.
"성장(성공)하는 사람(조직/국가)들은 A, B, C, D를 갖춘 것으로 연구결과가 도출되었다. A, C는 괜찮은데, B, D가 안 좋은 사람(조직/국가)이 있다면 B, D를 보완하라. 그러면 더욱 성장(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법의 문제점을 과장해 표현하면 3살배기 아기에게 "너는 자라서 성인이 되어야 하는데 성인은 A, B, C, D를 잘하거나 갖추어야 한단다. 지금부터 A, B, C, D를 조금씩 더 잘해보자꾸나."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영유아의 성장 과정을 보면 때로는 A라는 특징의 발달 과정에서 B, C가 이전보다 퇴행하는 듯한 현상이 (경험적으로 그리고 어렴풋한 기억에 연구결과로도) 종종 발견되는데, 이는 정상적인 발달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또한 꼭 a-b-c-d가 성장하여 A-B-C-D가 되는 것은 아니며, 아이의 성장은 때론 A-B-C-Z가 특정 시기에 A-B-C-D로 질적인 변환을 일으키는 형태로 성장이 이뤄지기도 한다(피아제가 사람의 발달에 관한 이해에 있어 가장 크게 기여한 바가 바로 이 점을 드러내었다는 점인 것으로 안다).
국가 차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된다. 각종 국가경쟁력 지표에 포함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시장의 자율성이나 개방성인데, 이들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국가들 역시 현재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정작 시장 자율성과 개방성을 제한하는 정책을 사용한 역사적 사례들이 많다. 외국의 경제/금융 상황에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민감히 영향을 받을 만큼 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우리나라 역시 이 수준까지 이르는 과정, 즉 IMF이전까지는 상당히 폐쇄적인 정책을 유지하였다.
가상이지만 이와 같은 사례들을 보면 성장(성공) 모형 연구에서 연구결과가 포괄모형 형태로 제시되는 경우, A-B-C-D라는 최종적인 요인은 밝혀지더라도, 성장(성공/발전)과 같이 시간 및 순서와 결부된 현상에 대해서는 정착 왜곡된 지침이나 시사점이 도출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HRD연구자들의 DNA에 어떻게든 성장/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부담 유전자가 붙박혀 있음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왜곡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성장 모형 연구에서 이와 같은 왜곡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간단하면서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성장 모형 자체에 시간과 순서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의 적용이 어려운 이유는 포괄모형과 이상모형의 간격을 초래하는 두 번째 원인, 즉 일반성과 특수성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국가이든 무엇의 성장을 탐색하는 연구에서 포괄모형과 이상모형 사이에 간격이 발생하는 두 번째 이유는 어떤 개체이든 개체공통의 일반성과 개체고유의 특수성을 함께 가지는 데서 비롯된다. 특히 특수성이 문제이다. 앞서 논의로 돌아가 성장 모형 자체에 시간과 순서를 포함시키는 문제를 살펴보자. 어떤 사람을 전문가로 육성시키는 과정에 대해, 어떤 국가를 선진국가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과정에 대해 포괄모형 형태로 제시되는 이상모형과 함께 이상모형으로의 발달과정을 명시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순서를 따라 포괄모형에서 제시하는 요인들을 갖춰나가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각 개체가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일괄적인 처방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역사적 사례를 통해 유형을 제시하는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일반성과 특수성의 문제는 연구와 관련된 기본적인 이슈이므로 이 정도에서 탐색을 마치고자 한다.
끝으로 지금까지 논의를 우리가 연구 중인 주제에 적용해 보자. (곁다리로 듣기만 했을 뿐 실제 연구설계와 결과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는 상태에서 하는 생각들임을 이해해 주시길). 먼저 인덱스 연구이다. 한국 사례를 분석함에 있어 단순히 현재 시점에서 각 요인들의 강약점을 OECD국가와의 점수 비교로부터 도출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각 지표들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 자료의 경우 보다 긴 기간에 걸친 데이터나 문헌 자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이를 한국 인적자원개발 경쟁력 분석에 활용하는 것이 적어도 논의와 해석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음으로 Best HRD와 인재상 연구이다. 양적 지표의 비교와 함께 성장의 스토리를 함께 담는 것이 Best HRD 인증기업이나 대한민국 핵심인재를 이해하는 더 좋은 길이 아닐까? 이와 같은 통합연구(mixed methods) 접근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통합연구 방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나,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연구자료나 연구방법을 통합하지 않을 때 현상에 대한 이해를 상당히 왜곡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여러 제약 요건에도 불구하고 통합연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